천안함과 통킹만 세상

요즘 대한민국에서 발행되는 어떤 종류의 신문의 기자와도 다르게, 박정희가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를 하던 70년대에 1차 자료를 꼼곰히 조사하고 그 자료들로부터 엄밀하게 연역된 주장을 썼던 기자가 있다. 그 기자가 이영희다.

이영희의 글들은 대한민국현대사에 대한 빛나는 저작들일 뿐아니라, 당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진실들과 탁월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에 그가 창작과 비평에 두 번에 걸쳐 쓴 베트남전쟁에 관한 글을 베트남전쟁의 성격에 관하여 알려지지 않았던 놀라운 진실들을 전해 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통킹만 사건이다.

그가 쓴 글에서 인용해보자.

       런 정세가 계속되는 동안 월진은 그 궤도를 돌아 운명의 날, 1964년 8월 2일은 왔다. 8월 4일 오후 11시 36분(워싱  턴 시간), 세계는 다음과 같은 미국 대통령의 엄숙한 발표를 들었다.

    베트남의 통킹만 밖 공해상을 순찰중이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는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의 공격을 받았다. 매독스호는 항공모함 타이콘테로가호에 지원을 요청, 함재전투기의 긴급지원을 얻어 이에 반격을 가했다.
 8월 4일, 같은 통킹만에서 미국 구축함 매독스와 터너 조이, 두 함은 다시 북베트남 어뢰함의 공격을 받고, 이에 응수, 어뢰정 3척을 격침했다.
  8월 5일, 미국 공군은 연 64회 출격, 북베트남 어뢰정 기지, 석유 저장소들 4개소를 공격하고 어뢰정 및 그 밖의 함정 25척을 격침 또는 격파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미국은 북베트남을 유엔안보리에 제기하고 본격적으로 북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기 위한 폭격을 시작했고 이것으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과의 긴장상태는 북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되었다. 즉 미국은 북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진 것이다.

이후 실제로 어뢰정의 공격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 의심이 되었고,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이영희의 베트남전쟁 (II)에 실렸다.

   베트남 해군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는 매독스호 선장 오지에 중령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뢰공격의 보고를 21회 받았다. 그 첫 2회는 정확하다고 판단했지만 나머지 19회의 보고는, 함체에 부딪혀 되돌아온 스크류의 소리를 캐치하여 이것을 적의 공격으로 오판했을 가능성도 있다. (68년 3월 12일자 [에스콰이어]지 회견기사)

   미국 해군 엄호하의 남베트남 해군의 북베트남 공격은 7월 30일 밤에 이어, 미국 구축함과 북베트남 어뢰정의 충돌이 있은 8월 2일 뒤에도 감행되었다. 3일 밤. 두 개의 <34알파> 작전이 실시되었다. 남베트남군이 탑승한 어뢰정이 론강 하구와 빈손에 있는 두 군데의 레이다 시설을 공격하였다. 미국 구축함들은 남베트남 해군에 의한 통깅만에 대한 이 야간작전을 엄호하였다. (비밀문서의 해설부)

이 사건이 있은 뒤 5일, 미국 정부는 2차 회전이 통킹만에서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해전(레소토작전) 사령관인 해드릭 선장이 이 회전이 끝났다는 직후인 5일 0시 반, 하와이의 통합사령부에 타전한 보고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적과의 접촉이나 적으로부터의 어뢰발사 등에 관해서 많은 보고를 받았으나 재검토한 결과 의심스럽다. 기상이 변덕스러웠고 음파탐지기(소오너) 담당병의 흥분으로 혼란이 일어난  듯하다. 매독스호는 적 어뢰정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와 같은 명령(공격)을 하달하기에 앞서 완전한 사태파악과 검토를 해 주기를 바란다.

  TOD영상, 일지, 교신기록등의 1차 자료가 하나도 제시되지 않고 모든 관련 자료가 통제된 상태에서, 고작 낡은 파편하나로 북한의 어뢰에 의한 공격이라고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조사결과만이 진실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며, 어뢰에 맞았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그리고 그 주장에 따르자면 당연히 경계근무 태만으로 군법재판에 당장이라도 회부되어야 할 군 관계자들의 발표당시의 웃는 모습은 참으로 사악하다.

  과거의 전력을 보아 북한의 소행임에 틀림없다는 주장 역시, 과거에 숱한 핑계와 거짓 사건을 일으켜서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전력을 미루어보아서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별로 신빙성이 없다. 양심적인 미국인들이 많다고 해서 미국정부가 언제나 정의와 진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에 수많은 증거가 있다. 통킹만사건이 그렇고 가까이는 아프가니스탄 침략이 그 많은 증거의 일부분이다.

  북한이 한 일이라고 확신에 차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군부강경파들은 예외로 하고,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해 "군역을 필"한 최소한의 책임조차 회피한 사람들이 군대를 갔다오고 또 군대에 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확실치도 않은 주장으로 남북간에 긴장을 조성하고 전쟁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대한민국은 남북간의 긴장관계를 통하여 이익을 얻는 소수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한, 심지어 그것이 공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더욱 더, 증거와 진실에 대하여 알 권리는 정보를 통제하는 소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의무를 다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살림을 위하여 세금을 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다.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모든 1차적 자료가 공개되고 그것에 근거한 자세한 조사가 벌어지고 세심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에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해서 응당 해야 할 일들을 못한 것이 된다.


덧글

  • ArchDuke 2010/05/23 20:34 # 답글

    어째서 사실 증거보다 정황 증거를 집착하시는지......
  • 별아저씨 2010/05/23 21:15 #

    합조단이 제시한 어뢰파편이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라는 것은 주장이지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정황증거를 말하고 있는 것은 합조단입니다.

  • ArchDuke 2010/05/24 00:12 #

    ???? 그 주장이 사실 증거가 되는거라고요. 맞으면 ok고 틀리면 수고했심 다시 1번 더 찾아보셈 ㅂㅂ 되는데, 그런 직접적인 것을 정황증거라고 하기엔;
    알리바이하고 물증하고 다르잖습니까;
  • 별아저씨 2010/05/24 11:18 #

    네 알리바이없이 물증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ArchDuke 2010/05/24 12:04 #

    ;ㅅ; 에구에구;;;;
    그러니까 흉기에 지문이 묻어있고 현장에서 발견되었을때 이것에 묻은 혈흔이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있다. 라는것은 증거가 되겠지요.
    그리고 살해시각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리바이가 됩니다. 우리가 TOD 영상으로 알 수 있는것은 살해현장 근처의 CCTV에 가깝긴 하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침몰시 장면으로 침몰 원인이 어뢰인지(논란이 되고있는 물기둥이라던가) 이런것이라서 그렇게 결정적이진 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걸 정부에서 감춰두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사건을 판단하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요인이 아니지 않을까 하네요.
    일지와 교신기록은 TOD 영상보다 더욱 직접적 가치가 떨어지며 이쪽은 기밀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일반에 공개하긴 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몇분전까지 문자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 전후로 갑자기 문자가 끊겼다는 유가족(?)의 증언이 그때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거 다 개인적인 소견이라서, 정확도는 매우 떨어집니다.
  • 별아저씨 2010/05/25 15:54 #

    "흉기에 지문이 묻어있고 현장에서 발견되고 이것에 묻은 혈흔이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그 사람에 의해 사용되었는 지 안되었는 지, 그리고 사건의 그 시각에 그 현장에서 사용되었는 지 입증이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알리바이입니다.

    일지와 교신기록은 서해교전의 예만 보더라도 충분히 공개되었던 것입니다.

    사건에 관한 1차 자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ArchDuke 2010/05/25 16:08 #

    저번에 공개가 쉬웠다고 해서 이번도 같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에 의해서 사용되었는지는 지문만으로도 검증 가능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사용자의 혈흔도 같이 발견되었고 사용자의 손에 상처가 있다면 더 확실하지요. 증거만으로 알 수 있다면 굳이 알리바이는 입증하지 않아도 되지요. 만일에 상대가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면 깨야 하지만 불확실하다면 굳이 여기 있었다고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 볼트 2010/05/24 10:29 # 답글

    그냥 씁쓸하네요. 이렇게까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 사이에 만연한 건지, 아님 수학선생님이 싫어서 수학공부하기도 싫어하게 된건지...
  • 별아저씨 2010/05/24 11:16 #

    합리적인 말을 하고 있는데 못믿겠다고 하면 무조건적인 불신이지만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왜 못믿느냐고 하면 그건 우기는 것이지요.
  • 2010/05/26 13: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별아저씨 2010/05/26 13:25 #

    물론 스마트폰 자료요. 그럼 미리 감사드립니다.
  • 2010/05/26 13: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별아저씨 2010/05/26 13:40 #

    아 RMAA로 측정한 자료군요. 저는 손 닿는 곳에 Audio Precision가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RMAA의 측정은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 로리 2010/05/26 13:52 #

    Audio Precision 있으시다면야 당연히 AP자료가 훨씬 믿을만하지요 ^^ 돈이 있으면 AP에 더미헤드 있으면 합니다.
  • 스피노자 2011/09/12 19:06 # 삭제 답글

    통킹만 사건이 이미 미국의 조작이라는게 정부문서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어떻게 천안함 침몰이 많은 부분에서 의심이 많이 간다는것을 주장하는게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이명박이 직접 이건 거짓말이었다라고 해도 안 믿을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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